깃털에 새겨진 치열한 사랑과 화해: 이중섭의 ‘닭 그림’ 시리즈를 읽다전시장 조명이 나지막하게 내려앉은 미술관 한구석, 이어폰에서는 바흐의 무반주 체로 조곡이 나직이 흐르고 있었다. 수많은 관람객이 ‘한국인이 가장 사랑하는 화가’ 이중섭의 앞에 길게 줄을 서 있을 때, 나의 발걸음은 이상하게도 그 곁에 나란히 걸린 조그마한 닭 그림들 앞에서 멈춰 섰다. 황소가 민족의 억척스러운 한과 강인한 생명력을 거친 붓질로 포효하고 있다면, 화면 속 두 마리 닭은 훨씬 더 사적이고 뜨거운 삶의 궤적을 깃털 하나하나에 분출하고 있었다. 화가 이중섭에게 닭은 단순한 가축이나 자연의 일부분이 아니었다. 그것은 전쟁의 포화 속에서 가족과 이별하고, 가난과 고독에 시달려야 했던 한 남자의 치열한 내면이자, 바다 건너 일본에..